구매자를 이해한다는 환상

B2B 마케터들이 모이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 고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해.” 그러면서 만드는 건 18개짜리 질문 리스트다.

왜 사는지, 뭘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깔끔하게 3단계로 나눠서 파악하면 된다고 한다. 마치 레고 조립설명서처럼.

유튜브 알고리즘이 더 잘 안다

구매자 이해를 위한 첫 번째 질문. “지금 어떤 문제를 겪고 있나요?”

근데 이미 유튜브가 다 알고 있다. 새벽 2시에 “직장인 번아웃 극복” 영상을 찾아보는 마케팅 매니저. 점심시간에 “엑셀 피벗테이블 만들기”를 검색하는 신입사원.

알고리즘은 묻지 않는다. 그냥 안다. 당신이 뭘 찾고 있는지, 뭐가 부족한지, 언제 약해지는지.

장바구니가 말하는 진실

두 번째 단계는 “뭘 사려고 하는가”다.

재밌는 건 B2B 구매자들도 결국 쿠팡에서 장보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프로젝트 관리 툴을 고르는 방식이나 새벽배송 요거트를 고르는 방식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리뷰 보고, 가격 비교하고, “품절임박” 표시에 혹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결재 라인이 좀 더 복잡하다는 것뿐.

HOW가 아니라 WHY NOT

세 번째는 구매 프로세스 파악이다. 누가 승인하고, 예산은 얼마고, 언제까지 필요한지.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왜 안 사는가”다.

돈이 없어서? 아니다. 대부분은 실패가 두려워서다. 새로운 툴 도입했다가 팀원들이 안 쓰면? 비싼 컨설팅 받았는데 별 효과 없으면?

인스타그램에 뜨는 “이 제품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어요” 광고를 보면서도 안 사는 이유와 같다.

패턴이라는 착각

마케터들은 패턴을 찾는다. ICP(Ideal Customer Profile)를 만들고, 페르소나를 그리고, 여정 지도를 만든다.

그런데 정작 구매 결정은 금요일 오후 4시, 상사가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한마디에 결정된다.

레딧에서 본 어떤 댓글이 기억난다. “우리 회사는 6개월간 CRM 툴을 검토했는데, 결국 CEO가 골프장에서 들은 걸로 결정했다.”

진짜 이해

18개 질문으로 구매자를 이해한다?

틱톡 댓글 하나가 더 정확할 때가 많다. “그냥 남들 다 쓰니까 샀어요.”

구매자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도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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