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주식 하면 삼성전자부터 떠올리는 게 한국인의 본능이다. 하지만 진짜 반도체 황제는 따로 있다. 대만에 있는 TSMC라는 회사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이름부터 길다. 줄여서 TSMC라고 부르는데, 이 회사가 하는 일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남의 칩을 대신 만들어주는 공장”이다.
파운드리가 뭔데요
반도체 업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삼성이나 인텔처럼 설계부터 제조까지 다 하는 회사가 있고, 애플이나 엔비디아처럼 설계만 하고 제조는 남에게 맡기는 회사가 있다.
TSMC는 후자의 제조를 전담한다. 이걸 파운드리(Foundry)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반도체 대행업체”다.
그런데 이 대행업체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애플의 아이폰 칩도 여기서 만들고, 엔비디아의 AI 칩도 여기서 나온다. 심지어 AMD, 퀄컴까지. 글로벌 IT 대기업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공장이다.
2025년 2분기 실적이 미쳤다
숫자로 보면 더 확실하다. TSMC의 2025년 2분기 매출이 317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54% 증가한 수치다. 주당순이익(EPS)은 1.48달러에서 2.47달러로 66% 급등했다.
반도체가 불황이라고 난리던데 이 회사만 혼자 축제 중이다.
성장의 핵심은 AI다. 고성능 컴퓨팅(HPC) 부문이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2020년에는 30%였는데 5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ChatGPT 붐이 일어나면서 데이터센터용 AI 칩 수요가 폭발한 결과다.
기술력이 진짜 말이 안 된다
TSMC의 진짜 무서운 점은 기술력이다. 현재 전체 매출의 74%가 7nm 미만 첨단 공정에서 나온다. 7nm, 5nm, 3nm 이런 숫자가 작을수록 더 고성능 칩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도 첨단 공정을 하지만, TSMC와는 격차가 크다. 특히 수율(제대로 나오는 칩의 비율)에서 TSMC가 압도적이다. 애플이 굳이 대만까지 가서 칩을 만드는 이유가 있다.
2025년 하반기에는 2nm 공정도 대량생산에 들어간다. 2nm라니, 바이러스보다 작은 크기다. 이 정도 되면 기술이 아니라 마법 수준이다.
돈도 엄청 많다
TSMC는 현금성 자산만 9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순현금만 550억 달러다. 이 돈으로 뭘 하느냐? R&D에 쏟아붓는다.
2025년 2분기 자본지출만 102억 달러다. 전년 같은 기간(63억 달러)보다 62% 늘렸다. 이 돈이 다 새로운 공장과 장비로 들어간다.
연구개발비도 계속 늘고 있다. 경쟁사인 인텔이 허덕이는 동안, TSMC는 더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돈 많은 집 자식이 사교육비 더 쓰는 격이다.
고객사들이 줄 서서 기다린다
재밌는 건 고객사 포트폴리오다.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브로드컴… 글로벌 반도체 설계회사들이 총출동한다.
최근에는 구글까지 합류했다. 구글이 자체 AI 칩인 Tensor G5 TPU 생산을 삼성에서 TSMC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이건 꽤 상징적인 사건이다. 삼성 대신 TSMC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더 잘 만들어주니까.
Microsoft도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많은 칩이 필요하다. Office 365의 AI 엔진 일부를 Anthropic으로 바꾼다는 소식도 있다. 이런 경쟁이 격화될수록 TSMC 같은 제조업체가 웃는다.
주가는 어떻게 됐나
올해 들어 TSMC 주가는 32% 올랐다. 같은 기간 S&P 500 지수가 11% 오른 걸 감안하면 3배 가까이 더 올랐다.
그런데 밸류에이션은 여전히 합리적이다. 현재 주가수익률(PER)이 27.75배인데, 이는 역사적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AI 붐을 타고 실적이 급성장하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싼 편이다.
2027년 예상 PER은 18.4배까지 내려간다. AI가 구조적 성장 트렌드라면 이 정도 밸류에이션은 매력적이다.
리스크는 없나
당연히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미중 갈등이다. TSMC 난징공장에 대한 미국의 특혜 조치가 올해 12월 31일부터 종료된다. 하지만 이건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 주가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환율 리스크도 있다. 대만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달러 기준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다만 대만 달러는 아시아 통화 중에서는 변동성이 적은 편이다.
AI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도 양날의 검이다. AI 붐이 꺾이면 타격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IoT 등 다른 분야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 포트폴리오는 분산돼 있다.
결론: 여전히 사야 하나
16분기 연속으로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기록한 회사다. 기술력으로는 독보적이고, 현금도 충분하고, 성장성도 확실하다.
문제는 이미 많이 올랐다는 점이다. 하지만 AI가 아직 초기 단계라는 걸 감안하면 더 오를 여지도 있다. 특히 2nm, 1.4nm 같은 차세대 공정에서 TSMC의 독점력은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개별 투자자 입장에서는 변동성을 각오해야 한다. 반도체 주식은 원래 롤러코스터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보면 TSMC만큼 확실한 수혜주는 드물다.
AI 시대의 최대 수혜자를 꼽으라면, 엔비디아와 TSMC 둘 중 하나다. 엔비디아가 설계하면 TSMC가 만든다. 둘 다 없으면 AI 혁명도 없다.